좋은글·그림
ㆍ작성자 푸른나무
ㆍ작성일 2015-05-15 (금) 14:07
ㆍ추천: 0  ㆍ조회: 252       
ㆍIP: 58.xxx.111
어느 후배의 돌직구
어느 후배의 돌직구

1. 왜 자주 전화 안 하느냐고 핀잔주지 마세요. 후배에게도 후배의 생활이 있답니다.
필요할 때만 전화 하냐고도 하지 마세요.
아직 선배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증거니까
서운해 하지 마세요.
오히려 영광이고 다행스러워하시면 됩니다.

2. 이젠 기다리지 마세요.
기다리는 모습은
젊었을 때나 아름답지
나이 들어 기다리는
모습은 추레합니다.
자식도 후배도 친구도 기다린다고 전화하거나 찾아오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젠 선배가 먼저 전화하셔서 보고 싶다고,
만나자고 해야 합니다.
시간은 선배가 훨씬 더 많고,
선배는 충분히 만나자고 할 권리가 있습니다.

3. 밥값, 술값, 찻값,
언제나 선배 혼자서
다 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객기 안 부리셔도 됩니다.
밥값이나 찻값 정도는 후배가 낼 수 있도록 양보해주세요.
입 대신 지갑을 열려는
자세는 정말 높이 평가합니다. 이젠 입보다 귀를 더 크게 여실 때 맞습니다.

4. 눈물 글썽이셔도 됩니다.
후배 앞이라고 창피해 할
필요 없습니다.
험난한 인생역정사
듣고 있노라면
저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다만, 레퍼토리 좀
다른 걸로 바꿔주던지
편집 좀 새롭게 해주세요.
그게 그거인데다 하도 리플레이해서 이젠 그 추억이 선배 것인지 제 과거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입니다.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그거 인간답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5. 세상에서 가장 무섭지
않은 게 무엇인지 아세요?
제 생각에는 책을 읽지 않는 어른입니다.
30분만 같이 얘기해보면
금세 그 사람의 바닥이 드러나더군요.
책을 읽는다는 건
시대를 산다는 것이고
세상사에 참여한다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잖아요.
어떤 책을 흥미롭게 읽었노라고 말할 때
선배가 그렇게 근사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선배에게서 선배만의
균형 잡힌 생각을 들을 때
자주 만나고 싶어집니다.

6. 회사에 올 때 아웃도어 같은 옷 좀 입고 오지 마세요. 곧 명퇴하고 산으로
떠날 것 같아서,
프로다워 보이지 않아서,
취미와 직업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길하고 불안합니다.
점심 먹고 배 튀어나온다고
바지 후크 풀고
다니지 좀 마세요.
바지 허릿단을 늘리시던지
헬스장 가서
원상복구
좀 하세요.
담배냄새, 술냄새
풍기지 마시고
멋지게 차려 입고 다니세요.
형수가 바람 못 피우게 한다고 어중간하게 짧은 바짓단의 양복바지 입히시거든 과감하게 찢어버리세요. 여자만 화장해야 하는 거 아닙니다.
나이들수록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아야 합니다.
선배의 내면처럼 그런 중후하고 격조 있는 모습이 외양에서도 보이면 좋겠습니다.

7. 형수 자랑 좋습니다.
자식 자랑 좋습니다.
백두대간 종주 자랑 좋습니다.
행복해 보여서, 선배다워 보여서 참 좋습니다.
부럽고 멋진 인생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입니다.
투기한 땅값이 또 올랐다느니,
상속받을 유산이 얼마라느니,
몇 백만 원짜리
와인을 마셔봤다느니,
내 불알친구가
총장이 됐다느니
그건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기억에도 남지 않고
선배 이미지 제고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8. 대통령 하는 일이나
정치 돌아가는 꼴들이
영 마뜩치 않은 것 잘 압니다.
그렇다고 싸잡아 고래고래 분별없이 쌍욕을 날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체통을 지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보다 우리의 의식수준이 훨씬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도 그들처럼 괴물이 될까봐 심히 우려 됩니다.
쌍욕부터 날리지 마시고, 선배의 인격으로 냉철한 비판의 말을 조근조근 들려주세요.
낮고 조리 있는 선배의 고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9. 밥 먹으러 갈 때
메뉴 먼저 정하지 마세요.
한 번쯤 일행에게
물어봐 주세요.
선택권도 줘보세요.
새로 개척한 맛집에
데려가 주세요.
새로 시작한 숲해설사 공부와
새로 시작한 클라이밍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나는 아직 모험 중이고 나는 아직 설레고 있다고,
나는 사사로운 권위를 내려놓은 대신
나를 위한 새로운 선택권을 늘려가고 있다고,
선배의 건재함을 보여주세요.

10. 이젠 근엄을 떼어내려고 애쓸 때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엄숙과 체면이
선배에게 다닥다닥
달라붙을 겁니다.
아이와 장난치는 법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아내에게 애교도 떠시고 시시콜콜한 모임이 싫더라도 동창회도 나가시고 페북 사람들과 번개도 하세요.
문학 강연회도 좇아다니시고 음악회도 가시고
전시회도 가세요.
제발 가장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지 마세요.
제발 가장 빨리 회사에
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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