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부터 '난사'(蘭社) 시사 활동…자작 한시 500여 편 묶어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에서 물러난 뒤 인성 교육에 매진
국내 IT산업 선구자인 이용태(88) 박약회 회장은 30년 넘게 써온 한시 가운데 엄선한 500여 편을 묶어 최근 '행파 한시집'(杏坡 漢詩集)을 펴냈다. 이상헌 기자
얼마 전 정치권에서 뜬금없이 적정 수명 논란이 불거졌다. 어느 노(老) 철학자의 문재인 정부 비판을 두고서다. 진영 논리에 함몰돼 편가르기에만 익숙한 세태를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용태(88) 사단법인 박약회(博約會) 회장은 최근 펴낸 '행파 한시집(杏坡 漢詩集·661쪽, 명문당)'에서 이런 세태를 따끔하게 비판했다. 책에는 30년 넘게 써온 한시 가운데 엄선한 500여 편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2017년에 쓴 '유림에게 보내는 격문'(檄儒林)이란 칠언율시(七言律詩·일곱 글자로 된 여덟 줄의 한시) 뒷부분을 보자. '人亡換作利眞寶 世遠都忘義本根 敢檄斯文回道德 不行知識只空論'(인망환작 이진보하야 세원도망 의본근이라, 감격사문 회도덕하노니 불행지식지공론이라).
우리말로 옮기면 '사람 도리는 없어지고 이익만 진짜 보배가 되어, 세상이 바뀌니 의리가 본바탕이라는 것도 잊는다네. 감히 선비들에게 격문을 보내노니 도덕성을 회복하라고, 지식이 행해지지 않으면 단지 빈 헛소리일 뿐이라고'란 뜻이다.
시집에 실린 작품 상당수는 이 회장이 1987년부터 몸담아온 '난사'(蘭社)라는 이름의 시사(詩社) 동인지에 수록된 작품이다. 난사 동인인 이종훈(86) 전 한전 사장은 책 서문에서 "한시를 처음 짓는 사람은 절구(絕句)부터 시작해 율시(律詩)로 발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행파는 첫 작품부터 율시를 지었다"며 그의 시재(詩才)를 높이 평가했다. 이 전 회장의 동생 이장우 영남대 명예교수가 전체 교열과 윤문을 맡았으며 남옥주 퇴계학연구원 연수원, 이승발 전 경일대학교 특임교수, 주동일 전 영남대학교 강사가 초역에 참여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유행어가 딱 어울리는 이 회장은 삼보컴퓨터, 두루넷 등을 설립한 대표적인 국내 IT산업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PC를 생산했으며, 컴퓨터통신과 초고속 인터넷 도입에 앞장섰다. 지난 4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정보통신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
2005년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인성 교육에 매진해오고 있다. 후세들을 제대로 가르쳐서 대한민국을 진정한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에서다. 고(故) 김호길 포항공대 총장 등 지인들과 함께 2003년 도산서원의 기숙사인 박약재((博約齋)에 모여 도덕국가를 재현하자는 취지로 만든 박약회, 그가 이사장을 지낸 퇴계학연구원이 발판이 되고 있다.
이 회장은 경북 영덕군 출신으로 영남 유학의 명문인 재령 이씨 영해파 19대 종손이다. 영해면 인량리에 있는 그의 고향집인 '충효당'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돼 있다.